삼국 시대 언어에 대한 고찰(1) 역사/문학/예술

어부님의 의문 제기: 한-일 언어 관계(4) ; 일본 이주 한국계 규모
삼국 시대 언어와 관련하여 참조할 점: http://mattathi11.egloos.com/1919778
덧: 삼국 시대 언어에 대한 고찰(1)의 내용에 대한 보충 해설.

삼국 시대 언어에 대한 고찰(1)

*쓰는 내내 끊임없는 의욕을 불어 넣어준 새우깡(...)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새우깡이 아니었다면 가락국 신화만 설명하고 대충 넘어갈 뻔했습니다.
*읽기에 앞서서 양해를 구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재 100% 완벽한 답안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언어학계에서는 크게 3가지의 의견이 나와 있는데 아래는 일반론일 따름입니다. 대충 해설을 하고 나서 마지막 부분에 나머지 두 견해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나마 말을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Wall of Text-


 


1. 신라-가야 사이의 언어에 대해서.


1-1. 건국신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가락국 부분은 비교적 자세히 서술했고, 나머지는 대충 넘겼는데 왜냐하면 이미 몇 번 얘기가 나왔던 부분이기 때문입니다(일단 대충 다 쓰고 나서 내키면 신라 부분도 자세히 풀어두도록 하겠습니다).

가락국 건국신화- 김수로신화

開闢之後 此地未有邦國之號 亦無君臣之稱. 越有我刀干 汝刀干 彼刀干 五刀干 留水干 留天干 神天干 五天干 神鬼干等九干者
-三國遺事-

천지가 열린 후, 이 땅에는 아직 나라의 이름이 없었고 왕이나 신하를 가리키는 말도 없었다. 세월이 흘러, 아도간(我刀干), 여도간(汝刀干), 피도간(彼刀干), 오도간(五刀干), 유수간(留水干), 유천간(留天干), 신천간(神天干), 오천간(五天干), 신귀간(神鬼干) 등, 아홉간이 있어..... (이후 생략)

이 아홉 간(九干)의 의미는 아홉 집단을 가리킵니다. 유수간은 어업집단, 유천간-신천간-오천간은 수렵집단, 신귀간은 주술사집단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머지는 보통 제1집단, 제2집단과 같은 의미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도刀'라는 단어는 아마도 거주지역이나 무리를 뜻하는 말로 진한으로 피난 온 연燕나라 사람들이 썼던 말인 탁(아나, 윈도우에서 지원 안 하네요)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즉, 이미 이건 독립된 아홉 부족이 아니라 하나의 연맹국가 체제를 갖춘 형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天이란 쓰인 부족은 '이주민 집단'일 확률이 높습니다. 즉, 가락국(가야)는 토착민+이주민 국가였을 거란 얘기지요.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三國遺事-

거북아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 안 내놓으면
구워서 먹어 버리겠다(!)

참조: 먼저 알려드릴 점은, <구지가>는 우리말을 한문으로 번역한 한역가인 관계로 해석 방법이 조금 달라집니다. 龜何龜何는 '거북 어디 거북 어디'로 해석하는 게 아마도 맞지 않을까 싶은데 왜냐하면 한역가(번역 한시)에는 향찰식 한자표기로 何(하)를 호격(부르는 말)으로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한다 해도 의미상으로는 통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습니다. '거북아, 거북아.'라고 해석해도 된다고 봅니다. 다음으로, 首其現也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머리를 내놓아라'가 되는데 이걸 거북의 머리로 해석하면 그 다음 부분이 말이 안 되게 됩니다. 머리가 잘려 죽으나 불에 구워져서 먹히나 죽기는 매한가지잖아요? 즉 여기서 '머리'는 '우두머리'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구지가는 왕을 구하기 위한 주술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노래로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 거북을 매개로 하여 김수로왕(+떨거지 다섯)을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구지가를 풀어 보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시조 왕을 부르는 매개가 되는 동물이 거북이란 점이 실마리가 되는데, 거북은 한국 민속에서 예로부터 장수하는 동물로 신성하게 여겨졌고, 바다의 신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옛날에는 가옥을 지을 때 대들보를 얻는 상량식을 행하는데 들보의 상단과 하단에 河龍海龜(하룡해구)라는 말을 새기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河神과 海神의 가호를 받아 집이 오래 가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海龜라는 표현이 바다의 신, 거북이라는 말입니다. 즉, 거북에게 우두머리를 내놓으라는 말은 신격화된 바다에게 우두머리를 내놓으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즉, '바다를 타고 온 이주민'에게서 우두머리가 나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삼국 시대의 언어에 대한 내용만 다루기로 했으니 가락국(가야) 얘기는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신라 건국 신화- 6촌장 신화

<삼국유사>에서는 박혁거세의 탄생을 설명하기 이전에 여섯 명의 촌장이 각 성씨의 시조로서 처음에 산으로 내려온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필요한 부분만 추려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진한(辰韓) 땅에는 예로부터 여섯 마을이 있었다. 첫째는 알천(閼川) 양산촌(陽山村)이다. (중략) 둘째는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이다. (중략) 셋째는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이다 (중략) 넷째는 취산(嘴山) 진지촌(珍支村)이다 (중략) 다섯째는 금산(金山) 가리촌(加里村)이다 (중략)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이다. (후략)

알천(閼川) 양산촌(陽山村)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
무산(茂山) 대수촌(大樹村)
취산(嘴山) 진지촌(珍支村)
금산(金山) 가리촌(加里村)
명활산(明活山) 고야촌(高耶村)

마을 이름의 유래란 대개 마을의 특성과 깊은 연관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죠? 예로부터 마을 이름은 근처의 지리적 특성 내지는 역사적 특성을 지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선 처음 정착한 이들에게 역사적 특성과는 거리가 멀 터이고, 이 이름들에서는 일관성 있게 각 정착지역의 특성을 알려주는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자를 보세요. 모두 하나같이 '산'이나 '언덕'을 가리킵니다. 심지어는 숲이 많은 지역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며, 산 봉우리를 가리키는 곳도 있습니다. 그들이 농경민족이었다면 하나같이 산에 자리잡을 이유가 없으며, 동시에 천강신화적 구조(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옴)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이주민들이란 뜻입니다. 게다가 저런 취지를 볼 때 적어도 초기에는 수렵민족이 아니었을까 싶군요. (실은 이 수렵민족이었을 것이라는 근거로 다른 신화 두 개를 통째로 해석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까지 해석하자니 배가 산으로 가는 수준이라서-전 분명 삼국시대의 언어 관계에 대해 해석하자는 거였으니-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또한, 이 육촌장 신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6이라는 숫자(온전함)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이들이 '진한(辰韓)'에 속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6이란 숫자는 이들이 실제로는 단순히 여섯 개의 씨족은 아니었을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보다 더 많았을 게 당연하죠? 그리고 '진한'부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辰韓耆老者言 秦之亡人 避苦役適韓國 馬韓割東界地與之 其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謂徒 類似秦語 惑名之爲秦韓  -後漢書-

진한(辰韓)의 늙은이가 스스로 말하기를 진나라의 힘든 부역을 피해 망명온 이들이 한국으로 와서 마한이 동쪽 경계 너머의 땅을 잘라서 주었다고 했다. 나라(국)를 나라(방)라고 부르고, 활(궁)을 활(호)이라고 부르고, 도둑(적)을 도둑(구)이라고 부르고, 행주를 행상이라 부르고, 서로 부르기를 무리(도)라고 하는데 진나라 말과 유사하기에 간혹 이름을 진한(秦韓)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한서' 중에서-

辰韓 在馬韓之東. 其耆老傳世自言 古之亡人 避秦役 來適韓國 馬韓割其東界地與之. 有城柵. 其言語不與馬韓同. 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皆爲徒 有似秦人 非但燕齊之名物也. 名樂浪人爲阿殘 東方人名我爲阿 謂樂浪人本其殘餘人. 今有名之爲秦韓者.
三國志 卷三十 魏書三十 烏丸鮮卑東夷傳 第三十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그 노인들이 스스로 얘기하길 옛 망명인들이 진나라의 부역을 피해 한국으로 와서, 마한이 마한의 동쪽 경계의 땅을 잘라서 주었다고 했다. 성책이 있고, 언어는 마한과 같지 않았다(其言語不與馬韓同). 나라(국)를 나라(방)라고 부르고, 활(궁)을 활(호)이라고 부르고, 도둑(적)을 도둑(구)이라고 부르고, 행주를 행상이라 부르고, 서로 부르기를 무리(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연(燕)나라나 제(齊)나라의 말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진(秦)나라 사람의 말과 같았다. 낙랑 사람(樂浪人)을 가리켜 부르기를 '아잔阿殘'이라고 하는데, 동방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아阿'라고 불렀으므로 낙랑 사람들이 원래 자신의 무리로부터 남아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지금도 그런 이유에서 진한(秦韓)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삼국지 권삼십 위서삼십 오환선비동이전 권삼십' 중에서-

弁辰與辰韓雜居, 亦有城郭. 衣服居處與辰韓同. 言語法俗相似.

변진弁辰과 진한辰韓은 섞여 살았는데, 또한 성곽이 있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같다. 언어와 법 풍속이 서로 비슷하다.
-'삼국지 권삼십 위서삼십 오환선비동이전 권삼십' 중에서-




삼국 시대 언어에 대한 고찰(2)에서는 신라 건국 신화 해설 및 이와 관련된 문제(이를테면 신라는 투후 김일제의 후손이 세운 흉노족의 국가였다. 라든지)에 대해서 적겠습니다.

아래는 잡설.

[주인님] "아무래도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린 거 같아..."
[Shinel] "한자 새겨넣느라 한 세월, 타자치느라 두 세월..."
[주인님] "난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딱 오늘 분량 정도로 끝날 거라 예상했는데 이게 아니잖아!"

[Shinel] " 그럼, 예상은?"
[주인님] "오늘 거 x5 정도는 될 듯. 근데 그렇게 해도 실질적인 언어 비교는 못함."
[Shinel] "안 할 거죠?"
[주인님] "다음의 짤방을 보렴."
[Shinel] "사람들이 리플 50개 달면 할 건가요?"
[주인님] "글쎄. 생각해보고. 우리 일단 리플 50개 달리나 보고 정하자."
[Shinel] "근데 어제 주석만 올렸는데도 보러 온 사람은 무척 많던데. 리플은 두 개였죠?"
[주인님] "뭐 그렇지. 지인A는 리플수 0을 예상하던데. 리플수 5개 넘으면 중국에서 100원 송금해준대. 물론 배송료 선불로."
[Shinel] "리플 다섯 개는 꼭 받아야겠네요."
[주인님] "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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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解明 2009/06/21 00:49 # 답글

    잘 봤습니다. 당분간은 이른바 한계 언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실 건가요?
    그리고 중국 문헌 원문을 하나하나 입력하는 것은 아무래도 비효율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는 원문 서비스를 제공하니까 말이죠.
    제가 댓글 50개를 달아드릴 수는 없으니, 이렇게나마 연재 속도가 빨라지기를 바랍니다. ^^;
  • mattathias 2009/06/21 01:04 #

    실은 그거 쓰는 법을 잘 몰라서 들어갔다가 실패했다는 과거가...
    검색이 다중검색이던데 말이죠...
  • 친한척 2009/06/21 00:53 # 답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서 아는 건 없는 사람인데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네요. 50개 중의 하나로 (야) 더 재미있는 사실들에 대해서도 써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
  • mattathias 2009/06/21 01:04 #

    네, 재미있게 읽어 주시라고 썼습니다~
  • 한단인 2009/06/21 00:57 # 답글

    일단 50개를 목표란 의미에서 의미 불명의 댓글 하나..(어?)
  • mattathias 2009/06/21 01:04 #

    앞으로 47
  • 한단인 2009/06/21 01:02 # 답글

    아참..그리고 링크된 글에서 보니 신라와 백제 언어가 달라서 통역을 두었다는 기록 출처가 궁금하군요. 그쪽으로는 잘 알지 못해서리..
  • mattathias 2009/06/21 01:05 #

    일단 문헌자료인데 쓰면서 다시 찾아서 넣어야죠.
  • 解明 2009/06/21 01:25 #

    그게 아마 『양서』에서 나온 말일 겁니다. 신라가 중국 문헌에 처음으로 나온 게 바로 『양서』에서부터인데, 거기에서 '문자가 없고 나무에 새겨 신표로 삼았다. 의사소통은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했다.(無文字 刻木爲信 語言待百濟而後通焉)'라는 기록이 있거든요.
    여기에서 '문자가 없'다는 말은 아마도 한자를 아직 쓰지 않았다는 뜻인 것 같고, 통역 이야기는 '주변부'의 신라 사신이 '중심부'인 중국으로 갈 때 '매개'가 되었던 것이 바로 백제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직 중국과 접촉한 경험이 없었던 신라로서는 백제 사신과 동행하여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요. 그때 신라 사신은 중국어를 못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중국어를 아는 백제 사신을 통해 의사소통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신라와 백제의 언어가 달라서 통역을 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기록이 백제와 신라 사이에 언어가 통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없는 것이 백제 사신이 신라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알았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거든요. 오히려 그쪽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뒤에 김춘추 같은 인물(유능한 외교관으로서)을 생각해 보면 말이죠.
  • 한단인 2009/06/21 03:40 #

    아.. 그 기록이었군요. 만약 mattathias 님이 언급하시려던 것이 그거라면 저로서는 좀 의외.. 그 기록을 전혀 그렇게 생각해보질 않아놔서..

    해명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저걸 가지고는 어떤 사실도 알기 어려울텐데요.
  • mattathias 2009/06/21 10:48 #

    양서의 그 구절도 애기할 게 좀 있겠군요. 일단 3 or 4 번째 글에서 상담을.
  • highseek 2009/06/21 02:12 # 답글

    이것이 다섯번째 덧글 (응?)
  • mattathias 2009/06/21 10:49 #

    중국에서 100원 입금되겠군요?
  • Semilla 2009/06/21 05:26 # 답글

    덧글 하나 더 추가요~
  • mattathias 2009/06/21 10:49 #

    44 left. 어차피 언어 비교의 경우는 솔직히 재미는 없죠.
  • 변절자 2009/06/21 07:38 # 삭제 답글

    량서의 말은 백제가 신라를 폄하하는 것으로서, 이미 영일 냉수리비가 신라의 초공입조 전에 있었으므로 무문자라는 건 사실과 다름.

    삼국지의 진한 어휘에 대해서는 나름 고유어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예전부터 존재하였으니, 弧를 '활'로 이해한다든지, '阿'를 상대일어의 1인칭 a에 대응시킨다든지 하는 것임. 구체적인 건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다루었으므로 여기서 부언할 필요는 없을 듯.
  • intherain 2009/06/21 11:35 # 답글

    흥미롭긴한데 리플 50개가 채워질지는 ㅜㅜ
  • mattathias 2009/06/21 21:11 #

    오고 가는 리플 속에 싹트는 이웃사랑...
  • 운향목 2009/06/21 11:41 # 답글

    일단 리플부터 써야<-
  • mattathias 2009/06/21 21:11 #

    덧글의 생활화.
  • 언럭키즈 2009/06/21 12:45 # 답글

    아.. 어렵습니다.
    여튼 댓글 하나 더 추가.
  • mattathias 2009/06/21 21:10 #

    어렵죠. 보시는 분의 10%만 남겨주셔도 충분한 수치지만...
  • 박토 2009/06/21 20:52 # 삭제 답글

    비로긴 댓글도 포함되나요? 된다면 하나 추가요.
  • mattathias 2009/06/21 21:10 #

    네, 됩니다~
  • 인스 2009/06/22 01:03 # 답글

    선플 드립니다..
  • mattathias 2009/06/22 20:52 #

    네~
  • organizer™ 2009/06/22 11:06 # 답글

    대략 절반 정도는 온 것 같습니다.
  • mattathias 2009/06/22 20:52 #

    과연 다 채워질 것인가.
    어쨌든 기본적인 내용은 써둘 겁니다.
  • 직소퍼즐 2009/06/24 22:29 # 답글

    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에 이렇게 전혀 다른 해석을 보니 깜짝 놀라게 되는군요... 육촌장에 대한 내용도, 아홉 간에 대한 해석도 흥미진진합니다.
    어휴, 학교에서 대체 뭘 배운 건지 ^^;; 하긴 가야사 같은 경우는 별도로 다루지도 않고 곁들여서 넘어가버렸으니 말입니다. 간만에 가야사 책을 찾아서 뒤적거려 보니 언어와 관련된 내용은 들어있지도 않더군요. ^^
  • mattathias 2009/06/24 22:52 #

    이런 건, 학교에서 안 가르쳐 주거든요...
    대학교 전공분야가 아닌 다음에야...
  • 직소퍼즐 2009/06/24 23:03 #

    졸업한지 아무리 오래됐다고 해도......전공이 역사라고 말하기가 상당히 창피한 분위기로군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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