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실망. 기행/자연/도덕

1.
오늘 거의 1달 만에 시립도서관을 찾아갔다. 집에서 2분 거리지만 시간이 나지 않았다. 아몬드를 한 웅큼 쥐고 갔다. 가는 길에 큰  백구 한 마리가 쇠사슬 목걸이를 찬 채,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녀석은 굉장히 순하고, 또 사람을 잘 따른다. 두 달 전 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가져다 주기 위해 오른 팔 위에 책 다섯 권을 얹어 놓은 채 도로가를 걸어가다 갑작스레 나타난 크고 하얀 것에 급히 멈춰 섰던 적이 있다. 하얀 개였다. 덩치가 나만 했다. 품종은... 아마도 잡종이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은가. 나를 쳐다보는 동물을 마주할 때면 느낄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이란 단순한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힘든 것이다. 바이런의 말대로 '아주 충직한 친구'라고. 그때는 미처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 했기에 가지고 있던 과자 한 조각을 줬다. 전날 카페에 갔을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이 나왔던, '내가 싫어하는 다석 쿠키'였다. 그 개는 그걸 무척 기쁘게 받아 먹는다. 더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안타까울 만큼. 녀석은 이어 내 슬리퍼에 코를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으며 한 발을 들어 올려 내 무릎 위에 올려둔 채 내 어깨에 걸린 검은 빛 나는 손가방에 코를 가져다 댔다. '과자는 없다니까.'
 
'아마도 아몬드를 좋아하겠지.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비싼 거라고.'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할 책을 여러 권 가지고,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가는 길에는 쌀과 옷을 취급하는 도매상이 있다. 여름인 만큼 책 여러 권을 쥐고 가느라 조금 땀이 났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크고 하얀 개에게 아몬드 한 웅큼을 줄 수 없었다. 그 개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나는 오늘은 그 개가 집에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혹시나 안에 있을까 하여 건물 안을 들여다 보려던 나의 동공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그건 이미 하얗게 말라붙은 뼈 조각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고 잠시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뼈의... 크기로 보건대 얼추 들어맞는 것 같았다. 이미 일주일도 더 된 모양이었다. 군데군데 꺾이고 쪼개진 뼈들. 나는 한동안 그 뼈를 보다가 손에 쥔 아몬드를 검은 빛 나는 손가방에 집어넣었다. 주인이 아니라면, 누가 그 큰 개에게 손댈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이런 형태로 남겨둘 수 있었을까.

애정에는 애정으로 답하는 것이 생물의 도리 아닌가. 그 옛날,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라면 자신이 기르던 충직한 개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전 가족이 다 굶어죽는 것 보단 나을 테니까. 크고 하얀 개를 기르던 그 곳은 매일 일이 끊어지지 않는 의류 관련 가내 공장이었다. 쉴 새 없이 재봉틀을 돌리는 가게 말이지.

그들이 과연 돈이 없어서 그 개를 잡아먹었을까. 그렇게 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까. 개가 남긴 하얀 뼈를 길가에 방치해 두어야만 했을까.

나는 한국인이 더욱 싫어졌다.

2.

사소한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방문했던 시립도서관의 책들은 군데군데 먼지가 쌓여있었고, 그것들을 관리해야 할 도서관 직원은 카운터에 앉아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일부 서적은 그 분류에 맞지 않는 자리에 놓여지도록 되어 있었으며 비치되어 있는 서적의 형태도 이곳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도서관이라 보기에는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웠다. 사서가 적다는 건 안다. 사람 수가 모자란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이면서 선풍기 바람을 쬐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먼지가 쌓인 책 위에는 오래 전에 죽은 벌레가 있었다.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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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를 먹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2008/07/31 06:08 #

    이런 글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닌데, 젊은 세대 가운데 개를 먹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의 글을 인터넷에서 자주 봅니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마음 속에 서걱거리며 스치는 것이 있는데, 개를 먹는다는 문화가 지난 세대로부터 새로운 세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끊겨 버린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동네 어르신, 친척분들, 부모님들이 손수 개를 잡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앉아 큰 쟁반에 담겨 오는 장국을 나눠먹고 여기저기서 음식을 가져다가 같이...... more

덧글

  • 우렁군 2008/07/31 01:13 # 답글

    어헝 개이야기 왠지 단편소설을 읽는듯한..

    중복의 희생양이 되었군요


    그리고 우리나라 공무원이야 옛부터 유명했잖아요

    나라돈으로 먹고살걱정없으니 일이 손에 잡히나
  • mattathias 2008/07/31 11:17 #

    일단, 안타까운 일이지.

    아냐, 도서관 직원이란 그리 편한 일이 아냐. 절대적인 숫자가 너무나도 부족해. 도서관의 접수대를 지키는 건 '공공근로자'거나 그에 준하는 사람들일 거야. 그들에겐 의욕이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은 관리 되어야만 해.
  • 녹현 2008/07/31 05:29 # 답글

    어떤 기분을 느끼셨는지는 짐작이 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애완견과 식용견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적이 많습니다. 딱히 배가 고파서 잡아먹는 게 아니라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이고, 개를 잡는다는 건 동네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한때를 보낼 수 있는 흥겨운 이웃 잔치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흔한 일이고요. 딱히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새삼스럽지만 상호 이해라는 게 참 어렵다는 걸 느끼네요.

    덧> 애정이 언제나 애정으로 보답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특히 대상이 동물이라면 더욱 상황은 일방적으로 흐르더군요.
  • mattathias 2008/07/31 11:22 #

    정확히 얘기하자면 보신탕을 나누어 먹는 관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형태의 '공적인 부조'는 대부분의 민족, 부족에서 나타납니다.

  • Rukihug 2008/07/31 13:20 # 답글

    식용견과 애완견을 떠나서 어쨋던 잡아먹었다고 했을때, 그 후의 뼈를 그렇게 쌓아둔게 더 이해가 안가네요.
  • 녹현 2008/07/31 23:18 #

    아마 예전에 개에게 누군가 뼈를 주었고 그걸 씹다가 우리에 둔 것이 아닐까요? 잡아먹은 개의 뼈를 기르던 개집에 집어넣어 둔다는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유해를 사용해 초혼하는 것도 아니고.. ;;;
  • aa 2008/07/31 15:14 # 삭제 답글

    인간의 애정과 동물의 애정을 착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 mattathias 2008/09/18 12:38 #

    에정에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필요하다니 참으로 놀랍군요. 목 위에 달린 쓸모 없는 기관에 영양분 좀 채워 넣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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